동래삼세고-2. 남고(증조부)
남고유고(南皐遺稿)
동래 삼세고 중 증조할아버님 문집 부분.
증조할아버님의 휘는 정규엽(鄭珪燁),
자는 군중(君重) 군진(君珍), 호는 남고(南皐)이시다.
고조할아버님과 함께 성재선생의 문인으로,
양대가 문인록인 냉천급문록에 등재되어있다.
1862년에 태어나시고 1906년에 졸하시었다.
집근처 8경을 노래한 시.
복산(장복산), 증봉(시루봉), 비령(비음령) 등 창원주변의 지명이 등장한다.
홍남주(洪南周)의 통제사 이직을 축하하는 시.
인터넷 검색에 의하면 삼도수군통제사는 1593년부터 1895년까지 약 300년간 존치되는데,
제1대 이순신장군 이후 홍남주는 제208대 마지막 3도수군통제사이다.
오른쪽 두번째 줄의 공시재교임(公時在校任)이라는 글귀를 보면
고조할아버님에 이어 증조할아버님께서도
당시 창원 육영재(育英齋)에서 강학 하셨음을 알 수있다.
서천 조정규(1854-1920)선생, 소산 김기호선생과의 편짓글.
조정규선생은 경술국치후 중국간도에 망명을 했으며(2006.6.4일자 경남일보 강우유맥 참조)
김기호선생은 사후에 통정대부를 추증받으셨다.
각 촌명 완암실기
완암마을 입구 호랑이가 엎드린 형상의 바위에
'완암(完巖)' 큰 글자 2자와 '기해 4월 일' 작은자 6자를 쓰시고 석공을 불러 새기셨다.
기해년은 1899년이다.
글을 새긴 자리에 붉은 주사와 전유를 섞어 덧칠하여,
비바람에도 닳아 없어지지 않게 해 놓으셨다는데
창원시 완암동과 그 일대 공단을 샅샅이 뒤져도
완암이라 각한 바위를 찾을 수 없었다.
산업화가 파괴해 버린 모양이다
선고 남고부군 언행 약록(先考 南皐府君 言行 略錄)
작은 할어버님이 증조부님의 일생을 연대별로 간략하게 정리해놓은 부분이다.
고조부님이 함안 거양에 잠시 우거하실 때 증조부님이 태어나셨음을 알수 있다.
증조 할아버지께서는 15세인 1876년에 경북 칠곡 매원으로 위금(委禽, 장가)가셨다.
당시로서는 아주 먼 곳 혼인을 하셨는데,
고조부님 성재동문인 교리(校理) 이신영(1838-1889)의 같은 마을 친척,
박곡선생 대사헌 이원록의 8세손녀인 광주이씨 규수.
우리 집안 IQ 업그레이드에 지대한 공헌을 하신분으로 후손들에게 추앙받는
증조할머님 매원할매께 장가를 드셨다.
이신영(李臣榮)은 1870년(고종7년) 생원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문과 급제 후 지평과 교리를 지내고 통훈대부에 오른 어른이다.
증조부님의 백조(伯祖, 큰 할아버님)인 묵재(默齋)할아버님의 묘소 제례완문.
증조부께서 돌아가셨을때 일방사원들이 치제한 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