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깨기와 어머니의 신변보호증
"우리 딸이 왠만해선 화를 잘 안내지만 한번 화가 났다하면 대단하네. 조심하게.
성격이 그렇단 얘기지...."
이 말씀은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장가들러 한국에 온 내 신랑에게 준 경고장이고
"만약 네가 시집가서 살다가 남편이 장난으로 너를 살짝 때려도 친정으로 돌아와라.
내가 살아 있는 한 언제든지 받아주마...."
이 말씀은 우리 어머니가 외국으로 신랑을 따라 떠나는 내게 주신 신변보호증이였다.
그 때만 해도 요즘처럼 세상이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시대가 아니였는데 애지중지하던 맏딸을
바다건너 멀리 시집보내시면서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을까 ?
오직 믿을 사람은 사위가 된 우리 신랑이였으니 두 분은 행복하게 살겠지하는 기대 뒤에
숨은 우려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신 것이다.
난 맏딸 신드룸이 있는지 참을성도 좀 있고 너그러운 편이라 그리 쉽게 화를 내진 않지만
자존심을 건드리면 다른 사람인가할 정도로 성깔을 부리는 면이 있었다.
할머니나 어머님이 조선시대 끝물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시절에 사신 분들인데도
남존여비나 칠거지악등의 사상에선 벗어난 기질들이 세신 분들이여서 여자인 나를
맏아들같이 우대하여 기른 덕분에 좀 철딱서니없이 콧대가 셋다.
어쨌거나 미국으로 시집와서 탈없이 잘 살았다.
우리 신랑말에 의하면 삼십이 넘도록 연애다운 연애도 못하다가 맞선보아 만난 내가
첫사랑이였고 그대로 마누라가 되어서인지 내가 화낼 일을 안만들고 비위를 잘 맞춰주었다.
그렇게 7년이 지나고 서울에 계신 친정어머니가 날 보러 미국에 오시게 되었다.
하필이면 도착하시는 날 아침에 나는 일이 있어 밖에 나갔다가 급하게 마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집으로 왔지만 공항에 마중나갈 시간이 촉박해서 몹시 서둘러야 했다.
장모님의 첫 미국출행길에 놀래시지 않게 미리 미리 공항에 가고싶었던 남편은 안절부절하며
기다렸든게 화가 나는지 부엌으로 들어가는 내 등짝을 좀 세게 두드리며
"좀 빨리 빨리 다니면 안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순간, 나도 모르게 나는 설겆이통 옆에 있던 접시들을 사기로 된 싱크대에 던지기 시작했다.
쨍, 쨍그랑....쨍, 쨍.....와장창 !!!
엉?
나를 때렸어?
내 등짝을 팼어 ?
나한테 폭력썼어?
온 몸으로 화를 내며 계속해서 접시를 깨고 있는 나를 어이없이 바라보던 남편이 놀랜 얼굴로
"자아~ 그만하고 공항에 가자아~" 볼멘 소리를 했다.
그렇게 격렬한 반응이 나올 줄 몰랐는지 얼이 빠진 모습이였다.
일단 시간이 촉박하니 접시를 계속해서 깰 수가 없었다.
더구나 나한테 영구 신변보호증을 발행한 울 어머니를 마중가는 길이잖아.
우선 이 일은 나중에 처리하기로 하고 공항에 나가야지......
워낙 그리웠던 어머니를 내 집에 처음 모시는 일이 기뻐서인지 난 금방 기분이 풀렸고
남편 또한 어린애처럼 상기가 되어 어머니를 모시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 왔는데
앗! 채 치우지 못한 설겆이 통에 깨진 접시조각들이 가득히....................
우리 부부는 각자 하소연하듯이 나는 일을 빨리 마치느라고 나름대로 조바심을 하고 집에 왔는데
등짝을 맞았다고 설명을 했고 남편은 때린 것도 아닌데 접시들을 깨며 심술을 부렸다고,
저 사람이 너무한 거라고 투덜거렸다.
"세상에, 여자가 살림살이를 이렇게 부수는 일도 있니? 얘길 들어보니 임서방이 잘못한 것도 없네.
내가 워낙 얘를 위해 길러서 천방지축인 데가 있어. 미안허네. 임서방 ! "
"엄마, 이 사람이 내 등짝을 때렸단 말야, 폭력을 썼다니깐...."
"시끄러, 그건 폭력이 아니야, 접시를 저렇게 부셔뜨린 니가 더 폭력적이다, 얘"
아아! 엄마, 엄마가 나를 배신하시다니~
그 순간 나는 어머니가 발행한 신변보호증이 오래 전에 무효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경고대로 성깔 한번 호기있게 부렸는데 나를 그렇게 치켜 세워 기르신 어머니가
판정승으로 우리 남편의 손을 들어주신 것이다.
아니, 남편이 장난으로 때리는 시늉을 해도 나에게 돌아오라하셨던 말씀하고는 영 얘기가
틀려지잖아, 이게 어떻게 된거야 ?
아무튼 그렇게 혼이 난 남편은 그 후에 절대로 화가 난 상태에서 내 몸에 손가락 하나
잘못 대는 일이 없었고 나도 그 아까운 그릇을 깨는 폭력은 다시 쓰지 않기로 했다.
부부싸움에 기선제압을 확실하게 한 건 좋은데 다 철부지였을 때의 일이지,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신변 보호를 부탁할 친정도 없고하니 조신하게 살아야지 어쩌겠나.....
비록 한국에 친정은 없어졌지만 어머니가 낯설은 곳으로 나를 떠나 보내시면서 주신 그 말씀은
영원히 당신의 딸을 보호하고 지켜주시겠다는 사랑의 약속으로 남아 지금도 내 가슴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양인자 작사 / 김희갑 작곡 /도신스님 노래 - 바람이 전하는 말 / 리메이크
* 프리랜서 엄님 댁에서 가져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