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스몰

" 들꽃마을 "에 해당되는 글 1건

  1. 산간학교, 고령 들꽃마을 - 자세히+ㅅ+

산간학교, 고령 들꽃마을 - 자세히+ㅅ+


 

 

 

내가 찍어 싸이에 올린 사진과 다른 사진을 더해 좀 더 자세히 포스팅해볼까.

 

들꽃마을은 장애우들이 모여사는 마을이었다. 건립할 당시, 마을과 좀 더 가까이 있는 성당에 들꽃마을을 지으려 했었다. 그러나 마을 주민분들께서 반대하셔서 - 이유는 간단하지.. - 아주 험하고 경사도 장난 아닌 - 경사 정말! 내가 차몰고 운전하라 그러면 얌전히 다른 경력자들에게 운전대를 넘기겠다 - 훨씬 안쪽이자 강가로 들어가서 마을을 지었다. 우리가 묵었던 영성관과 들꽃마을 본관의 거리는 차로 5분이 되지 않지만 걷기도, 차 몰기도 불편한 산길이다.

 

그래서 습기가 많다고 했다. 들꽃마을 2층에는 거동이 불편하신 중환자분들이 계시다고 했는데 습기 때문에 여간 고생이 아니시라고. 사실 저 앞쪽 성당 있는 데 세웠으면 오가거나(무조건 차가 드나들어야한다) 습기 때문에 덜 고생할 수도 있었을텐데.

 

 

거기서 우리는 제 5기 자원봉사학교에 참여했다. 프로그램은 처음에는 교육으로 시작했다. 봉사활동에 대한 개요적 교육. 솔직히 봉사활동학교의 이론적 구색을 맞추는 목적이 짙어보였다. 

근데 왜 이렇게 생각이 안나지.. 프로그램이; 여튼 교육을 마치고 성 요한 재활자립센터를 방문했다. 들꽃마을에서도 여기에 출근하는 장애우분들은 엘리트인 셈이라 다른 분들의 부러움을 산다고 하고, 월급날에는 그 전표를 가지고 하루종일 자랑을 하신다고 한다. 하는 일은 우리가 보기에는 상당한 단순작업이었지만, 그 분들은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계셨다.

(단체사진은....무시해 주는 센스-ㅅ-;; 저 때 완전 사람 꼴이..)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재첩 채집을 빙자한 물놀이; 애들은 아주 더운 날씨에 시원한 계곡을 기대한 듯 하나.. 깊어도 무릎까지 잠기는 낙동강은 온천을 방불할 정도로 따뜻했다. 세상에 물놀이하면서 땀나는 건 처음이었다는 우리 집 셋째의 회고.. 여튼 놀기는 잘 놀더라. 난 구경만 했지만.

(재첩 줍는 아이들.. 그 재첩은 오후에 위로방문;차 간식을 사 들고 오신 성당 아주머니들에게 넘어갔다. 진-짜 많이 주웠는데....)

(놀‹š는 잘-....논다)

 

 

 그리고 저녁먹고 나서 허브 시청. 허브의 강혜정은 그만하면 꽤나 정신지체로도 조금 양호한 편. 귀엽고 얼빵;해 보일 정도로면 뭐................ 저녁을 먹은 식당은, 여기서 시설의 가족 분이 어떻게 다 드시나 싶을 정도로 좁았다.

 

그리고 나서... 숙소로 돌아와 허브 시청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애들은 자기들끼리 놀았다. 밤엔 컵라면 특별간식도 나왔고.... 그거 다 뜯어서 스프넣느라.....-ㅅ-

 

 

 

 

다음날, 아이들은 아침먹으러 그 산길을 걸어;서 산책 겸 가고, 햇빛 비치는 숙소를 나는 제일 늦게 나오면서 찍었다. 그렇게 점심 먹고 짐을 꾸리고 나서, 다시 본관으로 차를 타고 이동해 이번에는 휠체어 체험 등등의 봉사활동 교육.

 

 

(휠체어 교육 때였는데.. 피곤해서인지 조는 애들이 속출-ㅅ-;;;)

(그래도 역시 휠체어 경주; 이런 건 재미있나보다. 한창 나이의 남자애들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만.)

 

 

그리고 나서는 맹인 체험. 박수 소리만으로 파트너를 유도해 지정된 반환점을 돌게 하는 형식이었다. 아참, 이 이야기를 뺐네. 활동에는 조별로 점수가 부여되고, 점수가 가장 낮은 조가 설거지를 담당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식의 게임에는 어쩐지 경쟁의욕마저.

 

 

 

봉사활동 교육이 끝나고 나서는 차례로 실제 가족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봉사활동을 하는 일에 투입되었다. 들꽃마을 본관 1층에는 코스모스 1,2,3,4동이 있는데, 한 동에 8명이었나.. 그 정도로 정신지체 장애우분들이나 고아, 노숙자분들이 거주하신다. 안은 무지무지 깨끗했고, 청소는 할 지 몰라도 정리할 건 없어보였다. 아이들은 몇 명씩 배정되어 들어갔다. 

 

(코스모스 1,2동 앞에서. 오른쪽에서 두번째는 우리 셋째+ㅅ+)

 

그리고 바깥에는 들국화동이 있었는데, 들국화동은 각각 집 형태로 건립되어 있었고 주로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이 거주하고 계셨다. 거기로 투입된 아이들은 고스톱을 치시는 할머니들과 대화거리가 없었던 관계로-ㅅ-;;(얘들아 같이 치기라도 하지 그랬니;;) 바깥 잡초뽑기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점심 시간은 섭식 체험으로 구성되었다. 거동을 하실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야;;한다고 했다. 여기 있는 애들이야 먹는 데 문제 없으니, 뭐라고 말하고 입에 대어주면 날름 잘도 먹지만 장애우분들은 다를 게 아닌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일수도.. 반찬을 일일히 숟가락에 올린 다음 무엇이라고 말해주고 먹여주는 일이 조금은 예상보다 까다로웠다.

 

 

 

 

그리고 마지막 단체사진. 우리를 태우러 오신 신부님과 사무장님, 그리고 배웅하러 나와주신 - 헤어지는 걸 많이 섭섭해하셨던 - 여러 들꽃마을 가족 여러분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중 붉은 티는 거의 다 그 가족 분들이라고 보면 된다. 월드컵 때 입던 붉은 악마 티-. 많이 입고 계셨다.

 

 

 

 

 

 

난 중학교, 고등학교 때 봉사활동을 야매-ㅅ-;;로 채웠기 때문에 어느 시설은커녕 관공서에서도 한 번도 일해 본 적이 없다.(큰딸은 순전히 공부만 하라는 듯한 엄마의 노력;) 그래서인지- 휠체어 다루는 것도 이 분들과의 만남도 뭔가 뜻깊은 일이었다, 라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그런 걸 느꼈다면 좋을텐데.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들은 참 착했다. 어느 누구도 들꽃마을 가족 분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애들끼리 공차고 놀다가 하필이면 편찮으신 할아버지를 맞춰서 나랑 글라라 선생님이랑 삐질거린 적은 있지만;;

 

 

그리고 이 분들은 사람과 대화하는 걸 참 좋아하셨다. 처음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 분이 다가오셔서 일일이 인사하고 악수를 청하셨고(물론 막 품격있고 이런 건 아니고 반가워하는 듯한 그런) 나와 글라라 선생님만 해도 바깥에 앉아있으면 와서 대화를 거셨다. 특수학급에 다닌다는 것을 무척이나 자랑하고 싶어하시는 분도 계셨고 세례명을 자랑스러워하시는 분들, 우리의 신상명세;가 궁금하셨던 분들도.

 

확실히, 우리가 말씀드렸던 것을 오래 기억하지 못하셨다. 같은 걸 또 물으시거나 글라라 선생님과 나를 모녀 사이로 엮으시고도 계속 다른 애를 딸이냐고 물으셨던 백련 씨. 그럴수록 우리가 처음에 주의받았던 사항이 확실히 와 닿았다. '다시 온다거나, 사준다거나 하는 무언가를 약속해서는 안 됩니다.' 라던. 그런 건 무척이나 기억을 잘 하신단다.

 

 

그러고 보니, 나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말을 잘 걸어 주시더라. 중등부 애들이랑 이야기하고 있다가도 어떤 할머니가 다가와서 나에게 말을 거시면 나는 대화를 이어나간다. 수정이가 여기 계시는 분들은 언니를 되게 좋아하신다- 라니까 미연이는 우리 언니가 좀 편하게 생겼잖아-ㅅ-..........................................어우;;

 

 

 

 

뜻깊었고, 이렇게 길게 포스팅할 정도로 한가했던 내 여름 방학에서는 확실한 기억이 되어준 봉사활동학교였다.

 

 

 

....그나저나, 여기 포스팅한 거 보는 사람도 없으니 애들 모자이크 안 했는데, 괜찮겠지-?;

 

 

2008/04/18 17:39 2008/04/18 17:39
top

Leave a comment..